많이 안다고 해서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학교에서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많이 알지 못하는 처지에서 살짝 위로가 된다.
잘 가르치고는 싶은데 '아는 것 없음'이라는 족쇄에 평소 시달리기 때문이다.
스스로 돌이켜 볼 때에도 잘 아는 분야에서는 쉽게 말하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
대충 말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오류가 발생하기 때문에
좀 더 적확한 단어를 써서 그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대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신세대와 기성세대 정도로
대충 나눠서 설명하는 것에 부족함을 느끼기 쉽다.
기성세대도 4.19세대, 6.3세대, 386세대 등 세분화하고 싶고
신세대도 X세대, Y세대, N세대 등으로 나눠서 그 차이를 설명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때로 그것은 식자들만의 놀이, 즉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다.
일반 대중들에겐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를 악화시키는 또 다른 상황이 존재한다.
우리는 처음 배울 때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이미 알게 된 것에 대해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전혀 모를 수 있다는 것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구구단을 외웠다.
구구단을 외우는 과정이 그리 쉽지 않았지만 결국 모두 다 구구단을 외운다.
이제 자식에게 구구단을 가르친다고 생각해 보자.
구구단을 억지로 외우게 시키기 보다 원리를 이해시키려고 마음을 먹었다.
알기 쉽게 설명한다고 해보지만 아이의 반응은 어떨까?
- ...
- 차라리 그냥 외워라.
스틱!이라는 책에서는 이런 상황을 보다 자극적인 말로 표현했다. - 지식의 저주.
뭘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우리는 절대 그것을 모르던 단계로 되돌아 갈 수 없다.
무서운 이야기이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눈높이를 맞추어 설명해 보려고 해도 듣는 사람의 눈높이에는 도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두 사람 씩 여러 조를 짜서 실험을 했다.
한 사람은 노래리듬을 연주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노래 제목을 맞추는 사람이다.
동요나 대중가요 등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노래제목을 여러 곡 준비한 다음,
노래를 연주하는 사람에게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면서 그 노래의 리듬을 들려주라고 한다.
노래 제목을 맞춰야 하는 사람은 리듬만 듣고 그 곡목을 맞춰야 한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어느 정도 맞출 수 있었을까.
실험 중 노래를 연주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맞출 것 같냐고 물었다. 반은 맞출거라는 대답.
반대로 듣는 사람들이 결국 얼마나 맞췄을까. 노래 제목을 맞춘 비율은 2.5% 정도.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났을까?
노래를 손으로 연주하는 사람의 머리 속에는 노래가 흘러가고 있다.
자신의 머리 속에서 흘러가는 노래는 너무나 익속한 곡이고, 이 제목을 맞추는 건 또 너무나 당연하다.
반면 듣는 사람의 머리 속에는 아무런 노래도 지나가지 않는다. 다만 무수한 두드림이 있을 뿐이다.
이런 일들이 우리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반복된다.
학문을 논하는 학자들만의 공간에서 쓰는 언어와 대중과 학생을 상대로 하는 언어는 달라야 할 듯 싶다.
공부를 하는 사람은 모르던 단계로 절대 돌아갈 순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르던 단계를 상상하고 그 눈 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을 절대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려고 노력하지 말자. 다만 쉽게 말하자.
쉽게 말할 수 있다면 알고 있는 지식이 지혜의 관문에 접어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부터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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