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의 아트 인문경영 

인문학, 미술 속에 답이 있다


인문학이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그건 시대의 변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의 세계는 정보화 지식경제 시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모든 나라가 이제 '창조성 Creativity'에 나라의 운명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10만 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인재'를 길러내자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자원부족이 태생적 한계인 우리나라는 그 동안 교육에 공을 들여 왔습니다. 그 결과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문맹율을 기록했고 또 중등학력 분야에서 세계 정상권에 올라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보여지는 수치에 불과합니다.  내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평화상 1회 수상을 제외하고 노벨상 수상이 전무하다는 것은 빈약하기만 한 기초과학의 현 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또한 중등에서 유지되던 학력수준이 대학에 가게 되면 급전직하 추락합니다. 공들여 기초를 다지지 않고 조기에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계는 산업현장에서도 그대로 보여집니다. 그간 우리나라는 남들을 이끌기 보다는 세계 1등을 모방하면서 성장했습니다. 그간 이 전략이 나름 주효해 자동차와 IT분야에서는 괄목할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습니다만 이제 거대한 벽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창조'의 벽입니다. 

이 때 '창조'의 개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문제의 핵심이 보입니다. 20세기까지의 경영환경을 되돌아보면 하나의 특징으로 '기술우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그것이 제품이 되어 등장할 때,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그것들을 수용했습니다. 똑같은 제품들이 대량생산되었고 또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헨리 포드의 유명한 말이 떠오릅니다. 자동차 색상을 다양하게 만들면 어떠냐는 주위의 비판에 코웃음을 치며 한 마디를 날립니다. "여러분들은 포드 T모델의 색상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만 검정색일 때에만."


 


하지만 이제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젠 '기술우위'의 시대가 지나고 '인간우위'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망라하여 하드웨어 기술이 거의 평준화를 이뤄가는 이 때, 기업들은 다급한 마음으로 사람(인재)를 찾고 더 나아가 사람(인간)에 대해 알고자 합니다.

인간의 욕망, 감성, 가치관, 심리, 무의식에 대한 공부가 필수가 된 것입니다. 

지금을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라고 합니다.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재생산 됩니다. 거의 모든 인류가 마치 신경세포처럼 연결되어 거대한 신경망을 이루고 있습니다. 구글, 애플, MS 등 공룡 IT기업들의 건곤일척 싸움을 보면서 이제 미래 승자의 요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연결된 인류'를 대상으로 누가 새로운 '판'을 만들고 주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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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의 키워드를 찾아야 하는 우리의 관심이 미술로 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미술은 사조로 분류됩니다. 하나의 흐름이라는 것입니다. 그 흐름이 터져나오는 때면 예외 없이 위대한 '창조의 판'이 벌어집니다. 탁월한 천재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이들의 창조력을 뒷받침하는 후원자와 사회시스템이 적극 가동됩니다. 

예술은 늘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숙명을 지닙니다. 그 가운데 어떤 것들은 평범한 것으로 전락하고 어떤 것들은 시대를 선도하는 위대한 작품이 됩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예술은 그 시대의 문화를 대표하게 되고 그 작품들은 또한 가장 값나가는 상품이 되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해 냅니다. 

이제 미술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 놀라운 '판'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에서 찬란하게 꽃피웠던 바로크, 프랑스 절대왕정의 화려함을 상징하는 고전주의, 패자들의 반란과 영광으로 설명되는 인상파에 이르기까지 여러 판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주목하게 되는 '판'은 르네상스가 아닐까 합니다. 

김태진의 아트 인문경영. 그 시작을 위해 15세기 아탈리아로 여행을 떠납니다.



Posted by 기업인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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