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는 경영학과를 다니는 20대 초반의 직장인입니다. 야간반이지요.
2학년에 올라온 T는 1학기 제가 담당하는 교양과목을 신청하였고 그렇게 하여 저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시대변화와 인재상'이라는 테마로 진행하는 과목이었지요.
조직에 충성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만으로는 인생 중간에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세상이 왔다는 것을 한 부분으로 이야기합니다.

종강 전까지 수강생 얼굴과 이름을 외우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삼고 있는 저로서도
올해는 수강생이 100명으로 늘어나다보니 강의 초반 일일이 기억을 하기는 어렵더군요.
온라인 카페활동을 병행하는데 그 덕분에 강의 초반부터 학생들 얼굴과 이름을 익혀갈 수 있습니다.

T를 기억하는 건 강의 초반 개인 사정으로 결석을 하면서 꼬박꼬박 사전에 양해를 구하는 그녀의 태도였습니다.
내용도 읽어보면 핑계가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진실함이 묻어났지요.
그래서 기억을 하게 되었습니다. 강의 시간에도 둘러보다보면 열심히 경청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

제가 진행하는 강의에는 시험이란 없습니다. 대신 과제가 있지요.
T가 수강한 과목의 과제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미래퍼즐과 만능열쇠라는 제목의 것들이었지요.

미래퍼즐은 자신의 꿈을 발견하는 과제입니다. 시각적으로 표현해 보면서 구체화 해보는 과정이지요.
만능열쇠는 평소 어렵게 생각되어 미뤄두기만 하던 자신의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만들어 보는 과제입니다.

팀 활동을 통해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디어와 피드백을 주고 받는 참여 수업을 진행합니다. 이를 통해 과제에 대해 감을 잡게 됩니다. 시너지를 흡수하여 각자 개인 과제를 준비하게 되지요. 미래에 대한 꿈이 확실히 있거나 현실적인 난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본 학생들이 유리한 과제들이라 하겠습니다.

3.
T는 팀 활동에도 열심이었고 온라인 카페 활동에도 적극 참여 하는 등 우등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중간고사 기간이 막 지난 어느 날 T로부터 장문의 메일이 날라왔습니다.  내용인 즉, 학교를 자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다니던 직장도 그만둔다고 했습니다.
덜컥 염려하는 마음이 앞서 메일을 찬찬히 읽어 보았습니다. 이유가 궁금했지요.
이유는 바로 그가 덮어 두었던 꿈 때문이었습니다. 가야 할 길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 강해져서 '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교수님의 수업을 듣다가...정말 제 얘기를 듣는것 처럼 부끄럽고... 맘이 아팠는데 수업중에..
교수님 말씀해주신것 중에...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라고 하셨을 때
잊고 있던 제 꿈이 생각나서 너무 가슴이 아팠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 때부터 회사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제가 맘속에 담아 두었던 꿈을 꺼내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돈이 많이 드는... 저에겐 주제 넘치는 꿈이라고 생각했기에 일부러 더 거리를 두었던 제 꿈은
커스텀 페인팅 디자이너 입니다.

커스텀 페인팅이란 자동차나 바이크를 소유자의 개성에 따라 튜닝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성으로서는 조금 독특한 적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소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만이 대접받는 분야에서 들여야 할 시간과 비용은 엄두가 안날 규모였겠지요.
하지만 T는 마음을 굳힌 후 강의 시간에 배운 만능열쇠를 준비했고 문을 열기위해 열심히 돌아 다녔습니다.

저 여름부터 커스텀페인팅 전문업체에 들어가서 무보수로 일을 하면서 배우기로 했습니다.. 
(중략) 사실 여자가 선뜻하기 힘든 일이라서 고민도 많았는데 지금은 마음을 굳게 먹어서 너무나도 기대되고 행복합니다!!
자랑할 것은 못되지만 저번 주 내내 시험 다 빠지구 업체에 직접 가기도하고
킨텍스 전시장에도 가고, 이사람 저사람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그 중에 정말 맘에 드는 업체와 이야기가 잘 되었어요^^ 너무 행복한 한주였습니다.

과감하지요? 저는 강의 중에 학교 그만두라는 말, 직장 사표내라는 말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T는 자신의 꿈을 더 이상 감춰두고 있을 수 없었고,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경력자도 아니고, 미술을 전공한 처지도 아니다 보니 저 맨 바닥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이었지요.
불경기에 취업도 어려운 세상이라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4.
T는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공공기관에서 일을 했지요.
오래 다니면 남들 그렇게 부러워하는 바로 그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이었습니다. 

T와 약속을 잡고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았지요.
이미 자퇴하고 새로운 직장에서 견습생으로 일할 준비를 하는 T는 의욕에 넘쳤습니다.

이야기는  지난 과거에서 시작해서 미래의 계획으로 흘러 갔었습니다.
어려서 미술을 너무나 좋아했고 주위에서 인정 받았지만 가정 형편으로 자신의 꿈을 미리 접어야 했던 일,
어찌 보면 편안하고 무사태평 지낼 수 있지만 의미를 찾기 어려웠던, 그래서 다니기 싫었던 직장,
늦게 대학을 들어오면서 가졌던 기대들이 1년 만에 시들해졌던 것,
커스텀 페인팅의 현황과 나름 생각하고 있는 시장전망...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업체에 대한 동경과 향후 커리어를 쌓으며 도전해 갈 계획들...

확실한 비전이 있더군요. 곁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설레임이 찾아왔습니다. 본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5.
그 뒤로 자주 연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왜냐구요?
새로운 우여곡절이 있었거든요.
T가 견습생을 알아보면서 여기저기 노크 했던 이야기를 했었지요?
그 결과로 그 업계에 있는 많은 분들이 T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사실 T는 정작 가고 싶었던 업체가 있었지만 스스로 그 곳에 가기엔 자격이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좀 더 작은 업체에서 경험을 쌓고 1년 후 그 업체에 도전을 하려 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T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로 그' 업체 대표가 T를 불렀다고 합니다. 면접을 본 것인데요. 면접을 보고는 견습생을 하려면 본인 밑에서 하라며 바로 현장에서 채용을 했답니다. 조건도 매우 좋은 조건으로요. 일을 처음부터 배우느라 몸은 힘들겠지만 마음은 날아갈 것 같겠지요? 함께 일 하기로 했던 곳에는 사실 미안한 일이 되었지요. 양해를 구해야 했을 것입니다. 

정말 최고인것은....업체 측에서 저 미술학원에 보내준다고 합니다. 그만큼 열심히 하라는 뜻이겠죠... 저 진짜 정말 열심히 할꺼에요.근데 이번에 이사하면 미술공부도 좀 해야하니깐 컴퓨터랑 프린터도 제공을 해준다고 하네요...진짜 교수님이 말씀해 주신대로 제가 가려고 했던 길은 제가 만들어낸 안개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6.
신기할 정도로 잘 풀린 경우일까요? 그냥 운이 좀 좋았을 뿐일까요? 
저는 T를 만난 사람들마다 왜 T와 함께 일 하고 싶어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T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답은 그의 눈빛입니다. 작고 당찬 체구 내부를 온통 설레는 꿈이 가득 채우고 있었지요.
그 꿈이 넘치고 넘쳐 눈으로 뿜어져 나왔습니다.
차와 바이크 이야기 할 때의 그 모습이란! 열정은 전염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주한 사람은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채운 사람은 절대 놓쳐선 안된다는 것을요.

학교를 그만둔다는 T의 메일을 받았을 때 가졌던 염려는 이미 접어서 휴지통에 버린지 오래입니다.
그리고는 저를 돌아보게 되었지요. 제 마음 속에도 T가 담고 있는 만큼의 열정이 있는 것일까...
많은 핑계와 변명을 짊어지고 가느라 꿈과 열정이 납작하게 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T는 자동차 튜닝의 본 고장 미국에도 도전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곳을 누비며 코쟁이들에게도 열정을 전염시키는 모습을 상상을 해보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네요.

T가 어느새 제 스승이 되어 있습니다.  


Posted by 기업인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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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복민 2009.07.23 0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라는 분을 만나서 열정에 전염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도 잘 써주셨네요... 열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 서영옥 2009.08.12 1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수님! 정말 감동입니다. 늦기 전에 T에게 연락 한번 해 봐야 겠네요....

  3. 임성민 2010.07.09 0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어찌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원칙을 이야기 하고 있고, 삶을 후회없이 보내기 위한 방법을 이야기하는 글인데요. 마음에 이토록 와닿는 이유는 T라는 분의 구체적 사례 때문인것 같습니다. 공공기관에서의 평생 걱정없이 살수 있는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올수 있는 용기는 1000명 중 한명이나 가질 수 있을까요? 저도 지금 공공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지만 윗분들의 업무강도나 실적압박, 근무시간을 참고했을 때 급여수준은 조금 과하다고 느끼는게 사실입니다. 깨기 힘든 삶의 일상을 박차고 나오는 용기 정말 부럽습니다. 누구나 이야기에 대해서 '와. 대단하네'라고 감탄하기는 쉽지만 막상 자기자신이 실천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라는 생각이듭니다. 물론 다른 길을 용감히 선택했다고 해서 그 길이 100% 깨끗한 일들만 가득한, 노력한 만큼 댓가를 받는 곳은 아닐 것이라 생각되지만, 이런 용기를 지닌 분은 다 극복해 나가겠죠. 좋은글 감사합니다!

  4. 김민성 2010.11.04 15: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정된 조건까지 버릴 수 있는 열정이기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으리라...
    그리고 충분히 준비하고 결정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열정만으로 뛰어들기에는 너무 벅찬게 아닌가 싶습니다.

    • 기업인재육성가 김태진 2010.11.04 2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실이라는 벽이 참 높지요. 공감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벽이 만만하다면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를 막기 위해서인가, 내 경쟁자들을 막기 위해서인가... 그 결정은 온전히 나에게 달린 것이겠습니다.

  5. 송충만 2011.06.28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수님 강의를 저렇게 커다란 변화의 계기로 삼는 분이 계셨군요. 같은 이야기를 들었던 저는 아직도 한치 앞만 보고 살고 있는데^^; 본인의 삶을 찾은 T도 부럽지만 그런 삶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을 직업으로 갖고 계시는 교수님도 참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