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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경영/취업직장커리어

[김태진 칼럼] 스펙 유감

by -기업인재연구소- 2010. 1. 29.

[이 글은 서울 소재 모 대학 교지 요청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스펙(Specification)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처음엔 학교, 전공, 학점, 토익의 4개 항목이 있었습니다. 편입학원이 성황을 이루고, 복수전공과 부전공이 필수처럼 되었지요. 학점관리와 토익점수 쌓기에 저마다 올인하면서 대학 생활이 무미건조하게 변해왔습니다.


스펙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취업의 1차 관문인 서류심사에서 스펙상의 약점 때문에 걸러져 낙방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스펙에서 부족한 점이 없다면 자신이 지원한 기업에서 서류심사를 통과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입니다. 스펙의 효용은 1차 관문인 서류심사까지인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의 취업준비가 스펙에서 시작해 스펙으로 끝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고시공부를 하면서 1차 시험만 준비하는 사람이랄까요? 실제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은 사실 2차시험인데 말이지요.


또 배달에 비유할 수도 있겠네요. 배달을 가서 노크를 하자 주문한 사람이 나왔는데 확인해 보니 배달할 물건을 깜박잊고 안 가져온 경우, 어떻겠습니까. 돈을 받아가긴 커녕 문전박대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학생들을 기업면접에서 만나면 금방 티가 납니다. 조금만 추궁해서 물어보면 할 말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강의실과 도서관만 왕복하며 학창시절을 보냈으니 막상 기업을 노크하면서도 원론적인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면접스터디를 통해 외워온 말들도 금방 밑천이 드러납니다. 실제로 해보지 않은 일들을 끝까지 꾸며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이런 사람들은 바로 탈락 대상이 됩니다.

 
이런 일들을 겪는 과정에서 경험치가 쌓이면서, 면접에 대비하려면 스펙외에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공감대를 얻고 있습니다. 소위 취업 신5종세트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론이 있지만 봉사활동, 인턴 경험, 아르바이트 경험, 자격증 취득, 공모전 입상 등을 신5종 세트로 분류하는 것이 대세인듯 합니다. 스펙 일변도의 채용과정을 다변화하기 위한 기업들의 여러 시도가 있었고, 이들이 알려지면서 나름 차별화를 꾀하는 학생들에게 필수코스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것들의 효용이 준비하는 학생들의 기대만큼 그리 높지 않습니다.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방학을 활용해 봉사활동, 아르바이트를 하고, 요즘 필수인 휴학을 통해서는 인턴경험이나 해외 어학연수를 합니다. 거기에 자격증을 얹고 공모전 트로피를 지참합니다. 남들보다는 어쨌든 많이 하는 것이 덜 불안하겠지요.

 
이러한 신5종세트는 성공사례를 갖고 있습니다. "누구누구는 무스펙으로 **전자 들어갔는데 인턴경험 때문이래." "겸손한 스펙인데 4년 내내 봉사활동만 하고도 **텔레콤에 당당히 들어갔대."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선구자들이지요. 이런 사람들이 적었을 때에는 신5종세트가 파괴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다 이와 관련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채용담당자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요.

 
사실 한정된 시간에 이 모든 것을 마련해 취업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런 노력들이 면접 현장에선 한없이 진부하게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뒷북입니다. 봉사활동? 질문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구색을 갖추기 위해 한 줄 적은 봉사활동은 이제 질문거리도 되지 못합니다. 때론 오히려 역효과를 낳습니다. 그런가 하면 알바나 인턴, 자격증, 공모전... 이런 것들도 다음의 두 가지 기준에 들지 못하면 바로 휴지통으로 향합니다.


두 가지 기준이란 바로 합목적성과 일관성입니다. 이런 준비와 노력이 지원한 회사에 들어오기 위한 과정이었음이 일관되게 드러나야 하고 그것이 면접관들에게 공감과 흥미를 불러 일으켜야 합니다. 꾸미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경험한 것만이 느낌을 줍니다. 도서관의 따듯한 공기가 아니라 현장의 차가운 공기를 오래도록 접한 사람들이 이길 수 있는 게임이 되었습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스펙, 필요합니다. 하지만 최소사양으로 충분합니다. 최소사양이라는 말은 목표 기업에서 제시한 서류심사 합격 기준을 말합니다. 불안한가요? 보다 많은 곳에 서류합격을 해둬야 그나마 합격가능성을 높일 수 있지 않냐구요? 그 말도 일리는 있네요. 하지만 그것은 스펙외에 <플러스 알파>를 확실히 갖췄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플러스 알파가 불확실할 때, 업종에 상관없이 서류합격률이 높은 사람은 면접탈락률도 비례해서 높아집니다.


목표기업을 선명히 하십시오. 그리고 지원 범위도 목표기업을 중심으로 경쟁사와 유관기업의 범위내로 좁히십시오. 그 분야에서 요구하는 스펙 최소사양을 갖추시고 남는 시간에는 실제 경험을 쌓으십시오. 3.5 학점이 최소기준인데 굳이 A+맞기 위해 무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 하나에는 미쳐"보십시오. 요즘 기업들은 무언가에 단단히 미쳐본 친구들을 열렬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멘토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멘토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는 시행착오를 줄여준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가이드를 얻을 수 있고 선택의 기로에서는 후회를 줄여줍니다. 둘째는 열정과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취업의 과정을 혼자서 해결하다보면 어려움에 쉬 돌아서게 되고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 회복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뛰어난 멘토는 자신감을 되찾게 해주고 열정을 채워줄 수 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악동이자 모험가였지요. 영국 버진그룹 창시자 리처드 브랜슨의 한마디로 마무리 할까 합니다.


"제 아무리 복잡한 문제도 해결책은 있게 마련이다. 비행기를 조종하고 싶으면 열여섯 살 때부터 비행장에 가서 커피부터 끓여라. 항상 눈을 크게 뜨고, 보고 배워라.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굳이 디자인학원에 다닐 필요는 없다. 패션회사에 들어가서 빗자루부터 잡아라. 최선을 다해 자신의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